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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삶 이야기(수필) ◈

《인연》

 

인연

 

만나고 헤어지고 하는 일이란 게 참 대단한 일이다 싶다. 내가 어떻게 하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저절로 이루어지는 게 그 만나고 헤어지는 일인 까닭이어서이다. 이렇게 시작하니 뭔가 굉장한 말을 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지만, 실은 아무런 이유도 없다. 그저 아주 사소한 일들도 그냥 이루어지는 건 없더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을 하던 끝에 이런 심오하다 싶은 생각까지 하게 된 것뿐이다.

 

어제는 이번 학기 들어서 두려움을 갖고 시작했던 새와 생명이야기에 관한 주제선택 수업과 관련한 책 중에서 한 권의 저자가 하고 있는 전시회에 다녀왔다.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을 전시한 것을 본다는 의미도 컸지만, 저자를 직접 만나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생각에 설레어 며칠 전부터 가슴이 콩당콩당거렸더랬다. 학창시절에 친구들이 연예인이나 좋아하는 선생님에 열광할 때도 난 단 한 번도 그런 일에 열광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즈음 며칠은 그 친구들의 심정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될 정도의 시간이었다고 해야할까, 여튼 그런 시간을 보냈더랬다.

 

진작부터 사서 읽었었고, 이번 수업에 수업용 교재로 대량 구입해서 아이들에게 읽히고 있는 책을 한 권 들고 가서 직접 저자의 사인을 받았다. 그리고 이번에 새로 낸 책도 한 권 그 자리에서 구입 해 사인을 받았다. 저자의 사인을 받는 일, 이 행위 역시 내 생애 몇 안 되는 일이다. 몇 년 전 나무이야기를 해 주시는 고규홍 님의 책을 한 권 사서 강연을 듣고 사인을 받아 본 적이 있었는데, 그 후로 처음 있는 일이다. 얼마나 설레고 기분이 좋던지. 사인한 책을 품에 꼬옥 안고 돌아오는 길이 마치 첫사랑과 연애하고 돌아오는 소녀가 된 기분이었다고 하면 지나친 과장이었다고 하려나. 여튼 그만큼 좋았더랬다.

 

페북에서의 인연이다. SNS라는 곳이 가끔은 아주 이상한 사람을 연결해 주기도 하지만, 이렇게 멋진 만남을 갖게 해 주기도 하는구나. 잘만 이용한다면 멋진 공간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멋진 체험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실은 SNS로 인한 인연 덕에 심하게 가슴 아팠던 까닭에 이러저러한 실망이 컸던 이즈음이었기에, 내가 이 공간에 계속 머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많이 고민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머물렀던 이유는, 다른 이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돌아보고 기록하기 위해서였다. 내게 남기는 공간이라는 생각에서 머물고 있었던 이즈음이었다. 어제의 그 경험은 그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세상에는 나쁜 사람들도 있지만,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고, 역시 내 생각대로 SNS는 나를 위해서, 나 자신의 망각해 가는 기억을 저장하기 위해서 기록하는 공간으로 사용하면 그뿐인 공간으로 잘 사용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라는 결론. 내 기록을 위해 지내다가 이렇게 가끔씩 더할 나위 없는 보너스 기쁨까지 얻게 되는 이쁜 인연을 만나는 기쁨을 얻게 된다면 일석이조 아니 일석여러조가 되기도 하겠지. 그러니 지금처럼 순간순간 지어니는 내 생각들을 시로든 단상으로든 기록하며 지내보기로 한다.

 

살아가는 모든 순간순간이 인연의 연속이다. 방금 전 교실에서 만나고 온 귀여운 아이들도 인연이 지어내 만난 내 소중한 아이들이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내 소중한 인연이고, 오가며 부딪쳤을 나도 모를 그 어떤 사람들도 다 인연의 내 그물에 있는 존재들이다. 그러니 순간순간이 얼마나 소중한 것일까. 함부로 허투루 보낼 일이 아니다 싶다.

 

인연이 다한 것 같아 많이 미웠던 사람이 있었다. 최근 들어 옛 사람들의 말씀이 참 그른 데 없이 옳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는데, 그 중 하나가 시간이 약이란 말이다. 거기에다가 내 경험으로 더 추가한다면, ‘미운 정도 정이라고 시간이 지나면 그리워진다는 것, 그리고 모든 것이 지나고 나면 미움은 스러지고 이뻤던 기억만 남아 미움도 이쁘게 기억된다는 것이다. 그 까닭은 미움도 어쩌면 인연으로 지은 시간이라서 그런 걸 거다. 어쨌든 이제는 그 어떤 사람도 밉지도 않고, 그렇다고 심하게 그립지도 않고 담담하게 지나간 모든 시간들을 돌아보고 되새김질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어른들 말씀대로 시간이 약이 되어 내게 준 선물인가 보다. 그 어떤 일에도 크게 노하지도 않고 크게 서럽지도 않게 되어가는 것. 이렇게 성숙해지고 있는 중인 것 같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감정이 둔해지는 것 같아 조금 서운하기도 하다. 감정이 뒤끓고 활화산 같던 그런 날들이 문득 그리워지면서 말이다.

 

211008_쇠날

유스티나 푄Fh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