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래색 단상>
보래색만 보면 무조건 덤벼드는 나.
옷도 보래색 옷을 좋아하고, 꽃도 보라색을 좋아한다. 펜도 보래색을 사용하고, 중요한 것들은 보라색으로.
어느 해인가는 작은아이 친구들에게 저녁 사주겠다고 불렀더니 보라색 꽃다발을 센스 있게 들고 나타나 내게 함박 웃음을 짓게 만들기도 했었다. 또, 어느 해였더라. 보라 색 좋아하는 나를 위해 보라색 꽃이 있는 곳만 돌고돌며 한참을 함께 다녔던 적도 있더랬지.
달달한 향기에 이끌려 발길 머문 그곳엔 칡꽃이 한가득. 보라색 칡꽃이 흐드러쳐 있었다. 향기에 취하고 색에 취하고. 얼마를 머물었을까. 잊기로 했던, 이미 잊었다 생각했던 기억들이 오롯이 살아나 발앞에 데구르르 굴러와 생생하게 튀어나와서는 생글생글 이제는 물너나지 않겠다고 생떼를 부린다. 그 때문이었을까. 아물기 시작한 맘자리가 그예 들썩인다. 덮어두기로 한 기억들이 다시 춤을 춘다. 널뛰기를 한다. 한바탕 미친 춤사위라도 춰야 끝날 판이 펼쳐진 것 같다.
난 도대체 언제부터 보라색을 좋아하게 된 걸까. 고등학생 때였던가. 쥐꼬리만한 용돈 모으고 모아 남대문 시장을 돌고 돌아 수학여행용 옷을 하나 샀던 적이 있다. 그 옷도 보라색. 결국 그옷은 수학여행 때 입고 가지 못했다. 집에 와서 정신 차리고 보니 디자인이 넘 과해서 도저히 감당할 수 없었다. 옷을 사던 순간엔 색에 반해 그게 안 보일 정도였으니, 아마도 보라색에 대한 내 미침은 그 이전부터였음이 분명하리라 생각한다. 이 정도면 분명 보라색에 미친 게 분명하다. 광녀.
오늘, 칡꽃을 만나고 그 향에 취하며, 어느 해 그 향과 색에 취한 나를 위해 한없이 시간을 함께해 주던, 내 보라에 미침을 인정해주던 기꺼이 보라에 미침을 이끌어주던 이가 생각 나 비실비실 웃음이 나, 잠시 추억 속에 머물렀더랬다. 그니는 지금 어디서 뭘하고 있을까. 어쩌면 보라를 볼 때마다 그런 사람 있었지 하며 미소 한 번 지어주고 있을 지도 모르지.
뜬금없지만 색으로도 추억은 이렇게 되새겨지기도 하는 거구나.
210903_흙날 새벽_지나간 날의 일기 되새김질 중
유스티나 푄Fhon
![](https://blog.kakaocdn.net/dn/cJsMf8/btrd0uO02Y2/MOdAQXW2nyMPNLBpekGNFK/img.jpg)
![](https://blog.kakaocdn.net/dn/cKL1FS/btrdZW53pni/dsWHyX8amykPG5NwPzzAwK/img.jpg)
![](https://blog.kakaocdn.net/dn/Aqkpc/btrdXxyKbJg/2EpAed6K5tKpqu5WaMRPLk/img.jpg)
'◈ 바람의 삶 이야기(수필) ◈' 카테고리의 다른 글
뭐 이런 일이... (6) | 2023.10.05 |
---|---|
《인연》 (2) | 2021.10.08 |
단상_쓸쓸함 혹은 허무에 대하여 (5) | 2021.06.30 |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가 보다, 적어도 난.... (0) | 2021.06.22 |
단상_《신영복의 더불어 숲》 연수를 듣고 (0) | 2021.06.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