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이렇게 한 치도 다름이 없는 걸까. 변하지 못한 건지 않은 건지 모르겠지만, 여튼 그대로다.
저장된 창고의 글을 우연히 뒤적이다가 발견한 내 흔적. 거기에 고스란히 멈춰 있는 나란 존재의 편린들.
지금 쓰고 싶은 말을 그때도 그대로 쓰고 있었네. 그때도 아팠지만 잘 견뎠구나 싶어 대견하기도 하고, 그때도 아팠는데 지금도 여전히 아프구나 싶어 안쓰럽기도 하다. 마침 난 또 류시화가 작년 말인가 올해 초인가 출간한 책을 야금야금 읽고 있는 중이기까지 하니. 이건 뭐 쉽게 찾아 보기 어려운 데자뷰인 건가.
한 시간쯤이나 잤으려나. 거의 뜬눈으로 새벽을 맞이하고 천근만근 무거운 몸으로 출근한 아침.
그때도 잘 버텨 지금까지 왔으니, 지금도 잘 버텨 또 이쁘게 살 수도 있겠단 희망을 가져보며...
아자아자, 푄 힘내자~!
2021_0622_불날
유스티나 푄Fhon
류시화가 쓴 [지구별 여행자]라는 책을 읽다가... 책의 마지막 부분에 그가 만난 사두들의 어록들을 모아 놓은 곳에서 이런 글귀를 읽었다.
무거운 것
발꿈치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를 한 손에 들고 걸어가는 사두.
갠지스 강에 머리를 감고 햇볕에 말리고 있는 중이었다.
노끈처럼 꼬인 머리채가 제법 무거워 보여 내가 한마디 던졌다.
" 당신은 세상의 무게를 다 벗어던졌지만, 그 긴 머리의 무게만은
죽을 때까지 갖고 다니겠군요. "
그러자 그가 한마디로 응수했다.
" 본래의 자기 것은 무겁지 않다네. 자기 것이 아닌 걸 들고
다닐 때 무거운 법이지!! "
책을 읽어 가는 동안 참 여러 차례 멈춰야 했었다. 매일 조금씩 조금씩 야금야금 읽었다. 작가가 체험한 바를 온전히 이해하겠다는 무모한 욕심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내 경험에 비추어 이해해 보거나 나를 돌이켜 보는 시간을 갖기 위해서 아니... 읽어 나가면서 저절로 그렇게 머물어졌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그러다가...오늘... 많이 멈추어졌던 그 어떤 구절보다 내게 다가왔던 구절... 그건 바로 저 <무거운 것>이라는 어느 사두와의 대화 내용이었다. 아마도 그건 지금 내가 힘겹다 무겁다 여기는 이 시간들이 어쩌면 내것이 아닌 걸 애써 부여잡고 있으려 하는 데서 오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내가 과연 무얼 가져야 하는 겐지, 과연 온전하게 내 것이라 할 만한 것들을 붙잡고 있기나 한 겐지...
마치 안개 속을 거니는 듯한 나날들 속에서. 과연 내가 누구인지조차 헷갈리는 이 즈음의 나를 다시금 돌아보게 만들었기 때문이었던 거 같다. 물리적으로 짖누르든 심리적으로 짖누르든 그 모든 것이 애초에 내 것이 아닌 것들을 애써 부여잡으려 한데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든 것이다
비워야 할 일이다. 비워야 할 일이라는 생각이 더 절실히 든 순간이기도 하다. 이전처럼 마음 없이 살고자 함이 아니라, 애써 잡으려 하는 것에 대한 집착을 비워야 할 일이라는 생각~!!
여전히 한 치 앞도 분간할 수 없을 것 같은
짙은 안개 속을 거니는 듯한 나날이지만, 햇살이 따스하게 내려 쪼이면, 안개가 스러지듯. 언젠가는 이 안개같은 상황도 스러지리라 기대하며 나를 비워내고 가벼워진다면, 스스로 진 짐을 덜어 낸다면, 내 집착을 벗고 훌훌~~ 가벼워 진다면,
마알간 미소 머금고 한 해를 갈무리하며 홀가분한 맘자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 그래야겠다! 비우고 가벼워져야겠다! 무겁다고 낑낑 거리지 말고. 언젠가는 정말 무겁지 않은 내 것이 내게 오겠지. 오늘도 난, 무지하게 소심한 나와 함께 나를 버텨주기도 하고 상처주기도 하지만, 한편 지극히 낙천적이며 사람이든 상황이든 무작정 잘 믿는 내성격으로 마음을 가벼이 만들어 주며, 희망을 사알짝 꿈 꾸어 본다.
성탄절인데.... 내게도 선물 하나쯤 있지 않겠어. 뭐,이러면서...... (2006. 12. 25. 달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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