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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삶 이야기(수필) ◈

결론부터 알고 산다면…

‘서양식대로 페이지를 넘기면 결말부터 읽게 된다는, 세로로 써내려간, 동양의 글자들. 인생을 거꾸로 산다면 어떻게 될까? 결말을 안 뒤에 다시 대조국전쟁을 거쳐 십대 시절로 돌아간다면? 장차 시인이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네크라소프의 시를 읽는다면? 얘는 전쟁에 가서 돌아오지 못할 거야, 라고 생각하며 급우와 대화를 나눈다면? 그렇다면 원래보다 더 슬플지는 모르겠으나 그 순간에 더욱 집중하긴 할 것이다. 미래는 생각하지 않아도 되고 과거는 잘 알고 있으니, 오로지 현재에만, 지금 이 순간에만.

― 김연수, <일곱 해의 마지막> 중에서

 

정말 결말을 미리 알고 산다면 어떨까? 저 소설에서 한 인물이 서양의 책과 편집 방법이 달라 읽는 방향이 반대인 동양의 책을 읽어가며 생각한 것처럼, 현재에 더 집중할 수 있을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이미 알고 있으니 현재에만 집중. 그런데 이미 알고 있으니 오히려 덜 애쓸 거 같다는 생각도 든다. 행복한 결말을 알고 있든, 그렇지 못한 결말을 알고 있든, 그 결말을 맞이하기 전 지금이 중요해서 집중하는 일은 어려울 것 같기에. 특히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아는데 굳이 지금에 집중하며 이 순간만이라도 의미 있게 기억하자고, 남기자고 집중하기는 오히려 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다.

처음 이 글귀를 읽었을 때는 미리 알 수 있었다면 지금 이런 서툰 실수를 줄일 수 있겠구나, 과거로 보내진 시간을 곱씹을 필요가 없겠구나, 정말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며 살 수도 있겠구나 싶은 마음에 공감했던 것 같다. 그런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공감이 아니라 어기는 생각만 든다. 비뚤어지고 싶은 마음이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결말을 알았다면 더 집중할 것을.이 아니라, 결말을 알았다면 그때 그렇게 애쓰지 말 것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결말을 알았더라면 그때 그렇게 아프지 않아도 될 것을.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어쩌면 미래를 알 수 없기에 인생은 살 만한지도 모르겠다. 미래를 알 수 없어서 불안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내 의지에 의해 바꿀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질 수 있고, 노력이라는 걸 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후에 무모한 도전이었고 애정이었다는 후회가 들지라도 지금, 현재에 가진 열정을 다 쏟을 수 있는 건, 결말을 모르기에 내가 만들어가고 내가 주도적으로 이끄는 것이 내 인생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저 글귀는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그럴 수도 있고(어떤 사람들은 결말을 알기에 고민 없이 현재에만 집중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아닐 수도 있고(결말을 아는 데 뭐하러 지금 열심히 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중요한 건 현재의 내가 미래의 나를 만든다는 사실. 굳이 미래를 궁금해하거나 단정 지을 필요 없이 그저 지금 내 앞에 놓여 있는 시간을 살뜰히 살아가는 게 가장 현명한 삶일지도. 내일은 절대로 오지 않는 시간이고, 오늘 지금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게 삶이므로. 순간을 가장 기쁘게, 순간을 가장 편안하게. 순간을 가장 담담하게. 순간순간을….

 

2021. 3. 18. 나무날.

 

 

결론을 달고 있는 산수유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