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엉뚱하고 생뚱맞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내내 시간이란 게 참 고무줄 같은 거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고무줄도 고무줄 나름으로 그 탄성의 정도가 다를 터이니 뭐라 단정 지을 수 없는 그런 탄성을 지닌 것이 시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거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까닭이 특별히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지난 한 주간을 돌이켜 보다가 문득 든 생각일 뿐이다. 지난 한 주간 동안 대부분의 시간을 정신없이 바쁘게 보내는 와중에 아주아주 소중한 만남 하나를 기다린 것, 그게 특별한 일이라 할 수 있겠다. 그 기다림의 시간이 한없이 길어, 오지 않을 것 같으면서도 받아 놓은 날짜 맞이하듯 어느 순간 그 시간이 발 앞에 데구르르 굴러와 있었고, 하여 무척 행복하고 즐거운 만남의 시간을 보내고 들어온 게 고작 24시간도 안 되는 어제의 일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어제의 만남의 시간이 아득하게 생각된다는 것이다. 아득하다 못해 그런 시간이 내게 있었던가 하는 의문이 들만큼 머나먼 시간의 일이었던 양 여겨진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생뚱맞게 시간의 길이에 대한 것까지 생각이 미치게 된 것이다.
시간에 대한 생각을 하다가 기다림에 대한 것에로까지 생각이 시나브로 번진다. 좀 더 나이들기 전에는 기다림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줄 몰랐던 것 같다. 하여 기다림이란 늘상 마음을 힘들게만 만들어 주는 것이라 생각되었고, 하여 버겁고 아리기만 하게 여겨졌던 것 같다. 그렇다 하여 내내 힘들고 아프기만 한 건 아니었을 게다. 그런데 사람이란 아무래도 좋은 것보다는 안 좋은 것에 대하여 더 오래 생각하고 그걸 더 크게 새기는 경향이 있어서(적어도 내 경우에, 그리고 기다림의 경우에 말이다.) 그동안 수없이 많았을 내 기다림의 시간들이 아팠던 것으로만 기억되는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이제는 나이가 들어가는 까닭일까. 더이상 기다림이 아리지만은 않다. 가끔은 그 기다림의 시간을 은근히 즐기기까지 하는 나를 보게 된다. 조금 낯설고 생경한 나이다. 하지만 이렇게 변하는 내가 좋다. 이제 더이상 기다림으로 인한 아픔은 없을 것 같으니까. 기다림이라는 것이 형태가 그 어떤 것이든 다 좋다. 그냥 그 순간순간이 햇살 아래 잘 마른 빨래처럼 뽀송하면서 향긋한 냄새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군불 잘 땐 아랫목에서 오랫동안 평안하고 나른한 잠을 자고 일어난 듯한 느낌을 가져다 주는 것. 그것이 좋은 것이다.
오늘도 난 또 이것 저것 들을 기다린다. 시간은 여지없이 똑 같은 보폭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나만의 지극히 주관적인 시간은 내 맘자리의 보폭을 따라 길었다 짧았다를 그야말로 고무줄 늘이듯 하며 흐르고 있다.
어제부터 내린 비가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 그것도 제법 많이. 간밤엔 빗소리에 잠을 설치기까지 했다. 앞으로도 며칠 더 비 소식이 있는 것 같던데. 이 비 그치면 가을도 걸음이 빨라지겠지? 그것도 기다리는지는 일이다. 그러고 보면 기다림이라는 이름으로 나를 설레게 할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기대해 볼 만한 날들이다 싶다. 말은 이렇게 느긋하게 하고 있지만, 실은 얼른 달려가 보고 싶은 맘자리 꾹꾹 눌러 달래고 있는 중이다. 얼른 보고 싶다.
2013. 9. 11. 물날
유스티나 푄Fh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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